정형시의 모더니티에 관한 一考

 

각주

1) 민병기, 「한국의 자유시와 정형시의 관계」(한국시학연구 제4호, 한국시학회, 2001. 5. 10), pp. 117∼143. “주근옥,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기호학적 연구」(문학박사학위논문, 대전대학교 대학원, 2001.2. 22: 심사위원장 문덕수, 인준 2000. 12), pp.206∼291.”와 비교 확인해 보라. 주근옥의 논문이 3개월 앞섰다.

2) 주근옥,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기호학적연구」(문학박사학위논문, 대전대학교 대학원, 2001: 심사위원장 문덕수), pp.206∼291. 위 논문을 보완 증보하여 출판한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서울: 시문학사, 2001)를 본고의 전반에 걸쳐 참고바람.

3) 朴喆熙,「韓國詩史硏究: 韓國詩의 構造와 그 背景」(서울: 일조각, 1980), pp. p. 87. “다시 말하면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自己經驗을 통하여 있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개별화하고 또한 하나의 형식을 부여한다. 20년대 詩의 특징을 이루는 自己强調性은 그러기에 他說的 요소의 反命題라 보아 틀림이 없다. 따라서 한국詩에 있어서 <近代>의 변화는 他說的 요소의 거부와 자설적 요소의 발견이라는 패라다임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은 이 경우 당연하다”고 부연하고 있다. 즉 형식과 내용을 개별화하여 자기를 강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개별화의 개념은 표층적․심층적으로 모두 개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는데, 그러나 이것은 심층적 의미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표층적으로 결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평시조에도 소위 自說性이 있는 시가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그의 명제가 거짓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의 개별성에 대한 주장은 白大鎭․黃錫禹 등을 비롯하여 현대에 와서도 韓啓傳 등 많은 학자․문인들이 일괄되게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4) Ibid., pp. 87∼95.

5) T. S. Eliot, "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 in Selected Essays, op. cit., pp. 13∼22. 그에 의하면, 시인은 개성을 표현할 것이 아니라, 특수 매개체(여러 인상과 경험이 특이하고 예기를 불허하는 방식으로 결합하는, 개성이 아닌 단순한 매개체)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시에서 괴벽을 부리는 사람의 한 가지 잘못은, 새로운 인간정서를 표현하고자 애쓰는 것으로서, 이렇게 그릇된 곳에서 신기한 것을 찾기 때문에 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인이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정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정서를 사용하는 것이고, 그것으로써 시를 만들 때 현실정서에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One error, in fact, of eccentricity in poetry is to seek for new human emotions to express; and in this search for novelty in the wrong place it discovers the perverse. The business of the poet is not to find new emotions, but to use the ordinary ones and, in working them up into poetry, to express feelings which are not in actual emotions at all.) 또한 시는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 보면, 조금도 경험으로 생각되지 않는 무수한 경험의 집중이며, 집중으로 인하여 생겨난 어떤 새로운 것이며, 그것은 의식적으로나 또는 심사숙고 끝에 일어나는 집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회상된 것이 아니고, 그것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결합한다 하더라도, 그 평온은 다만 사건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졸렬한 시인은 흔히 의식적이어야 할 경우에 무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이어야 할 경우에 의식적이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지 이런 오류로 말미암아 그 시인은 “개성적”으로 되는 것인데, “시는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그러나 물론 개성과 정서의 소유자라야 개성과 정서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Poetry is not a turning loose of emotion, but an escape from emotion; it is not the expression of personality, but an escape from personality, But, of course, only those who have personality and emotions know what it means to want to escape from these things.)”라고 한 말과 朴喆熙 등 한국의 학자․문인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개별성과는 상반된 견해인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우에는 개별성이 표층에서 일어나야 함을 지칭하고 T. S. Eliot의 경우에는 표층에서는 개별성이 없어야 하고, 그것이 심층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6) 白大鎭도 서술적으로 된 시는 동감하라고 독자에게 대어드나 암시적으로 된 시는 적극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직 눈앞에 어떤 무엇을 방불케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最近의 泰西文壇: 불란서문단(佛蘭西文壇)”을 보라.

7) 高晶玉,「古長時調選註」(서울: 正音社, 1949), p. 19, 朴喆熙,「韓國詩史硏究」(서울: 일조각, 1980), p. 69에서 재인용.

8) 朴喆熙, op. cit., pp. 70∼73. 吳世榮,「한국근대문학론과 근대시」, op. cit., pp. 89∼96. 吳世榮도 朴喆熙와 마찬가지로 사설시조를 자유시로 보고 있다.

9) 朴喆熙.「文學槪論」(서울: 형설출판사, 1985), pp. 184∼187.

10) 趙東一,「우리문학과의 만남」(서울: 기린원, 1988), pp. 207∼209.

11) Ibid., pp. 241∼242.

12) Ibid., p. 242. 이 언급은 金億의 견해와 다른 것이아니다. “格調詩形論小考”에서 “時調形은 現代의 우리 思想과 感情을 담아 노키에는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넘우 簡單하야 使用하기 어렵은 點이 만습니다”고 한 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金億도 전통율격의 변형 내지는 서구적 운율을 수용하자는 것이지 고수하자는 것이 아니다.

13) 趙東一,「동아시아문학사비교론」, op. cit., pp. 435∼437. 그는 앞의 각주에서(일본의 자유시에 대한 언급) 본바와 같이 “근대시≠자유시,” 즉 “근대시=+정형시+자유시(일부)”라고 주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잘못 받아들였던, 다시 말해서 “자유시를 이룩하면서 서양의 본보기를 받아들인다는 구실 하에 아무런 율격도 없는 산문을 택해 시를 시답게 하지 않고, 민족문학의 창조력을 훼손시키는 잘못을 월남과 한국에서는 시정할 수 있었는데, 그 길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에서는 변이와 변형의 원리를 확대해 자유시이면서도 전통적 율격이 재활용되는 시를 마련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만으로는 충분한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통율격의 변이와 변형만이 반드시 자유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이러한 논리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근대시=자유시”의 논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일본의 자유시에 대한 언급), 프랑스의 근대시 가운데 그 일부만 오히려 예외적으로 자유시일뿐 다양한 정형시가 계속 사용되었으며 자유시가 주류를 이룬 것은 아니라고 하는 등 “근대시=정형시”의 등식에 대해 긍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시 이를 부정하는 등 논리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또한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정형의 전통 운율과 자유운율의 혼합”이기 때문에 결국은 “+정형시+자유시”의 좋은 예가 되지 않겠느냐고 반박하겠지만, 분명히 말해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에는 정형시와 자유운율의 시가 극명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그가 말하는 “전통 운율의 변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enjambement'와 같은 정형시의 예외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의 개성적인 자유운율의 자유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 스포트 라이트가 던져지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자유시 또는 현대시의 정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14) 조용훈, “근대시의 형성과 格調詩論,”「金岸曙 硏究」(서울: 새문사, 1996), pp. 112∼140. 그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즉 “정형으로부터의 일탈인 자유시형과 정형시형은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이별이니 그리움이니 죽음이니 하는 자유시에서 자주 발견되는 개인적인 정서도 민요에서 자주 나타나는 恨과 애수의 정서와 다를 바 없고, 구속으로부터의 자유가 자유시임을 이해한다면 그가 자유시와 근대화된 민요(시)를 대립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그 논리적 근거로서, 金億이 “定形詩에는 一定한 規準과 拘束이 잇는 것만치 詩歌로서의 形式이 完全히 表現되고 아니 된 것가튼 것은 容易히 알 수가 잇슬  아니라  엇던 意味로는 拘束 업는 自由에서보다 拘束 잇는 自由에서 좀더 緊張한 것을 볼 수가 잇습니다”고 한 것을, 부연 설명하며, “규제 속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가장 초기의 시관이었던 규제로부터의 일탈에서 시적 자유를 주장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규제 속에서의 자유=규제로부터의 자유”로 이해하며, 그 근거로 “자유시 속의 정서(그리움․죽음 등)와 민요시 속의 정서(恨․애수 등)”는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서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시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와의 구분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서만 있으면 다 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러한 주장은 논리성이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Paul Fort(1872∼1960)가 전통적인 형식으로 시를 쓰지만 근대적인 민요시인 동시에 자유시라는, 더 나아가 “정형시=자유시=산문시=민요시=격조시”라고 하는 金億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뒷받침도 되지 못하고 있다.

15) 成基玉,「한국시가율격의 이론」(서울: 새문사, 1986), pp. 292∼293.

16) 강홍기,「현대시 운율 구조론」(서울: 태학사, 1999), pp. 45∼46.

17) Ibid., p. 43. 이밖에 강홍기는 자유시에 대해 李商燮으로부터 힌트를 얻고있다.李商燮,「文學批評用語辭典」(서울: 민음사, 1976), s. v. “자유시.”

18) T. S. Eliot, "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 in Selected Essays, op. cit., pp. 18∼19. 이 말은 1917년 "Reflectios on Verse Libre"에서 언급한 말이지만, 1919년 "Tradition and Individual Talent"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The other aspect of this Impersonal theory of poetry is the relation of the poem to its author. And I hinted, by an analogy, that the mind of the mature poet differs from that of the immature one not precisely in any valuation of 'personality', not being necessarily more interesting, or having 'more to say', but rather by being a more finely perfected medium in which special, or very varied, feelings are at liberty to enter into new combinations.(시에 있어서 이러한 沒個性論의 또다른 국면은 시와 시인과의 관계이다. 원숙한 시인의 정신이 미숙한 시인의 정신과 다른 점은 꼼꼼하게 “개성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보다 더 흥미롭거나 “보다 더 많은 말”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며, 그러나 차라리 특수하거나 매우 다양하고 보다 더 멋지며 완벽한 매개체(觸媒)에 달려있다는 것을 유추적으로 귀뜸 한바 있는데, 이 촉매로서의 감정은 새로운 결합을 이루기 위하여 자유를 마음껏 구사한다는 것이다.)”

19) Tzvetan Todorov, 최현무 역, 『바흐찐 : 문학사회학과 대화이론』(서울: 도서출판 까치, 1987), pp. 69∼110.

20) R. Jakobson, 박인기 역, “시란 무엇인가,” 『현대시의 이론』(서울: 지식산업사, 1989), p. 18.